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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두대간 이야기 (1) - 산줄기를 찾아서

더큰곰 2010. 4. 23. 17:14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象圖)와 백두대간>

(이 그림이 편협한 '국수주의'로만 보인다면 그건 오해다. 이 단순한 그림 속에 아는만큼 보이는 깊은 진리가 담겨있다)

 

언젠가는 꼭,사람들에게 <백두대간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고 마음 먹은 적이 있었다.

 그 언젠가를 위해서,

오래 전부터 나름대로 이런 저런 자료를 모아 정리하기도 하고,

 새로운 깨우침을 한 장의 그림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나의 그림질(?) 습관 덕에 그럭저럭 '일러스트'도 꽤 쌓였다.

 선뜻, 내키는 대로 펜을 들지 못했던 이유는,

<백두대간 이야기>는 백두대간 만큼이나 길고, 끝이 보이지 않을 거라는

나의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백.두.대.간.

 대중매체를 통해서 <백두대간>이란 말을 누구나 한번 쯤은 들어 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백두대간>을 <태백산맥>의 옛 이름 정도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의미상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뭐 그게 그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도 많다. (길이만 좀 다르다고 한다.)

하긴 뭐, 나도 첨엔 그랬으니까...

어쨌든,

<백두대간>과 <태백산맥>의 이슈가 나타날 때마다,

나는 <조정래> 선생께 약간의 불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선생 덕(?)에 <태백산맥>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무거운 역사적 어휘로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선생께서 <태백산맥> 대신에 <백두대간>이라 이름하셨더라면,

백두대간의 부활은 더욱 장엄하고, 숙명적이고, 격정적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백.두.대.간.

내가 들려주고 싶은 <백두대간 이야기>는

사실, 백두대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백두대간을 종주해 본적도 없고,

백두대간을 이루는 수많은 산들 중에 내가 가 본 산은 몇 되지도 않는다.

나는 백두대간의 면면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다.

내가 알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상, <산줄기>에 관한 이야기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산경(山經))

 왜 <백두산맥>이 아니고 <백두대간>인가?

<산맥>이란 말을 옛날에도 사용했었나?

<산맥>은 <산줄기>인가?

<태백산맥>이란 이름은 언제 누가 만들었을까?

근데, 진정한 <산줄기>라는 건 뭘까?

<대간>이란 말을 처음 접하면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원초적인 질문들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산맥>의 뿌리찾기 여행을 떠나기 마련이고,

그 여행길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결정적 단서가,

<산경표>라는 책이다.

울나라 모든 산들이 이 책에 나타난다.

쉽게 말하자면 <산줄기족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 족보책은 단순히 산 이름만 모아 놓은 게 아니다.

울나라 모든 산들을 <산줄기>로 연결하여

<족보> 처럼 체계적인 계통으로 분류해 놓은 그 합리적인 과학성에

처음 접하는 이는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산경표>는 '테이블'이다.

당시에 '액셀'이 있었으면 참 좋을 뻔 했다.

이 '테이블'을 그림으로 옮겨 놓은 것이 <산경도(山經圖)>이다.

울나라 모든 지방의 <산경도>를 정부(김정호)가 제시한 <표준안>에 따라,

통일된 표준체계로 각 지방에서 제작하여 김정호가 통합, 집대성한 것이 바로 <대동여지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김정호가 혼자 발품 팔아서 전국을 누비며 지도를 손수 그려 가지고,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는 구라는 진짜 구라다.

 

제목부터가 <산경>이듯이,

이 책에는, <산맥>이란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단순하게 <산맥>이라는 하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는 <산경(山經)>이라는 이름으로 통칭하면서,

구체적으로는 그 구조적 등급에 따라,

<대간>-<정간>-<정맥>-<지맥>-<기맥> 등으로 세분화시켜 계통 시스템을 구축한다.

마치, 컴퓨터공학의 자료구조론(Data Structure)에 나오는

나무구조(Tree Structure)의 구성체계에 따른다.

(참고: <나무구조>는 하나의 뿌리(root)를 가지며, 순환고리(Loop)가 없다.)

 암튼, <산경표>라는 책을 접하게 되면,

 "<산맥>이 뭐지?"라는 의문은 저절로,

"<산경>은 뭐지?"라는 의문으로 바뀐다.

 다음 질문은 당연히,

"<산맥>과 <산경>은 뭐가 다르지?"가 되겠다.

 <산맥>이야 뭐,

학창시절 지리시간에 얼추 배웠으니까,

그 넘들의 모양새가 어떤지는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바이고,

어떤 게 어떤 건지, 구분은 안되어도,

태백, 소백, 차령, 노령, 마천령, 마식령, 낭림....

그 이름들이 낯설지는 않다.

(주입식 교육의 효과다. 우리는 왜 산맥에 대해서 의심해 본 적이 없는가?)

 그넘들이 이렇게 생겼었지, 아마?

 

편리하게 줄을 죽죽 그어댄 <산맥도> 덕에 우리는 마치 산이 연결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이거 배울 때...

의심같은 건 별로 해본 적이 없는거 같다.

뭐....

저 동네 가보면 산들이 저렇게 줄줄이 모여 있나 보다.....

라고만 생각했지 그 이상 더 알아서 먹고사니즘에 뭔 보탬이 되겠나..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지리 공부를 지지리도 싫어했다.)

 <산맥>이라는 단어를 언제, 누가 만들고 정의를 내렸는지는 몰라도,

대충 짐작컨대, <높은 산들이 줄지어 많이 모여 있으면 산맥이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 성 싶다.

 근데, 희한하게도.....

누가 그리 가르친 적도 없는데,

<산맥>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산>과 <산>이 이어지는 <산줄기>를 연상한다.

 아마도,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맥(脈,줄기맥>이라는 한자가 품고 있는 의미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맥(脈,줄기맥)이라는 한자에 꽂히다 보니,

<산맥>은 당연히 <산줄기, 또는 멧줄기>가 되어 버린다.

<줄기>....

다 알고 있는 말이긴 하지만,

새삼스럽게, <줄기가 머지?>라는 의문이 든다.

 

그럼,

<산맥>이라는 것이 과연 <산줄기>인가?  아닌가?

 <줄기>란 "반드시 이어져야 하고, 끊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우리가 정의한다면,

불행스럽게도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산맥>은 <산줄기>가 될 수 없다. 

(이 대목에서 첫 갸우뚱이 시작된다.  우리가 배웠던 '라오뚱방향 산맥'을 말하는 게 아니고...갸우뚱....)

영어로는 어떨까?

영어에는 똑뿌러지게 <산맥>과 1:1 매칭되는 단어가 없고, 여러가지 표현이 쓰인다.

Mountains로 표현하면 그냥 산이 모여 있는 곳이지, 줄기처럼 연결된다는 의미가 없다, ('산동네', '산떼판' ?)

Mountain Range로 표현해도 산이 줄지어 있다는 의미지, 끊어지지 않는다는 줄기성을 인정하기 힘들다. ('산나라비' ?>)

Mountain Chain, Mountain Stem으로 표현하면 이제사 안끊어지는 줄기의 성질이 확실히 보인다. ('산줄기', '산사슬' ?)

그런데, 우리가 배운 <산맥>은 개념상으로 볼 때,

<Mountains> 또는 <Mountain Range>에 가깝다.

 왜냐면,

족보를 꿰듯이 <태백산맥>은 <무슨산>-<무슨산>-<무슨산>으로 연결된 산줄기라는 식의

명확한 정의를 내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걍, 울나라 동쪽에 위치하며 영동과 영서를 나누고,

위로는 추가령 구조곡 남쪽에서 시작하여,

밑으로는 낙동강 하구에 이르기 까지 길게 늘어선 산악지역...

 이 정도가 그나마 <태백산맥>에 대한 정의라 할 수 있고, (문헌마다 조금씩 다르다.)

<산맥> 자체에 대해서는 어느 문헌을 찾아 보더라도 좀더 명확하고 구체적인 학술적 정의가 없다.

(서양 지리학의 이런 관점이 참 놀랍기도 하고, 희한하기도 하다)

 이제, 우리가 배워 왔던 <산맥>과 우리가 배워 오지 못했던 <산줄기>를 그림으로 비교해 보자.

 

근데, 왜 악착같이

<산맥>과 <산줄기(산경)>를 비교하려고 애를 쓰는가?

그거슨,

백두대간은 <산경>의 이름이요,

태백산맥은 <산맥>의 이름이기에,

<백두대간>과 <태백산맥>을 비교하는 것은

결국 <산경>과 <산맥>의 비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산경>과 <산맥>의 차이를 알아보는 것으로부터,

길고도 긴 <백두대간 이야기>는 시작된다.

 근데, 굳이 내 생각을 먼저 내 세우자면,

적어도 개념적 측면에서만 볼 때,

<산맥>과 <산경>은 서로 비교할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마치, <도로>와 <행정구역>을 비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강남대로>와 <강남구>을 비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기대했던 진정한 의미의 <산줄기>가 아니라고 해서,

<산맥>을 너무 매몰차게 구박하지는 말자.

(그래도 100년 동안 믿고 살아 온 정이 있지 않은가. ㅠㅠ)

 <산맥>은 <산맥> 나름대로,

서양 지리학의 그런저런 산물로서 적당히 대접해 주는 것으로 끝내면 될 일이다.

 그렇게 너그러운 염화미소를 지으며 통 큰 관용을 보이다가도,

어쩌다 산맥을 자세히 들여다 볼라치면, 다시 <산맥>이 미워진다. 허깨비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산줄기, <산경>에 대해서 만큼은,

그 진면목을 너무나 오랫동안 알아주지 못했던 우리들의 무지함을 반성하면서,

이제라도 깊이 이해하여, 사랑스런 마음으로 두루두루 아끼며 보살펴 주고 싶다.

자, 이제 슬슬....

있는 듯 없는 듯한 허깨비, <산맥>과

우리 눈 앞에 생생하게 살아서 움직이는 산의 용트림, <산경>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하자.

 

(계속)

 -mamZ'ang-

 
출처 : 홀로걷는 백두대간
글쓴이 : 박종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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