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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두대간 이야기 (3) - 노치마을

더큰곰 2010. 4. 23. 17:11

 

 

우리나라에,

마을 한 가운데로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그런 마을이 딱 하나있다.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에 있다는

<노치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홍수에도 넘치지 않을 뿐더러,

물 맛 좋기로 소문난 샘이 하나 있다는데....

 

그 이름이 <노치샘>이다.

 

대간의 오아시스인 셈이다.

 

 

 

 

 

암튼,

이 마을을 지나가는 대간꾼들만

일년에 4,000명이 넘는단다.

 

마을 이장님이나 할아버지들도

마을을 관통하는 대간 마루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일반 지도 상에는,

<노치마을>이란 이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1/25,000 지형도에는

조그맣게 <가재>라는 이름으로 표시되어 있고,

 

백두대간 등산지도에도

<노치마을>이란 이름 대신 <노치샘>으로 나타나 있는 경우도 있다.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1/25,000 지형도 (도엽명:남원,운봉) 2005년 수정판

 

 

 

<월간 사람과산> 창간12주년 기념, 2001년10월호 별책부록, <24구간 백두대간 종주 지도집>에서 발췌

 

 

 

<새처럼 보며 마루금 따라가기 백두대간 24> 지도집 2구간 (<고산자의 후예들> 발행)

 

<노치>란 이름은 <갈대.노(蘆)>에 <언덕.치(峙)>의 한자 이름인데,

원래는 이 마을에 갈대가 엄청 많이 자라고 있어서

<갈대마을>이라 했었단다.

 

근데, <갈대>를 전라도 사투리로는 <갈재>라 발음하고,

<갈재>는 다시 <가재>가 되어

<가재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지형도상 공식 지명은 <가재>이다.

 

이 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당산일 성싶은 커다란 고목나무 옆에

우리나라 지도와 산경을 새긴 석조물과,

백두대간 마루금을 지나는 노치마을에 대한 안내문이 있다.

 

 

 

 

 

 

 

 

근데,

이 마을 어디로 백두대간이 지나간다는 것일까?

 

이장님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들으며,

노치마을의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가보자.

 

(아!  이런 것이 산경이구나.  옛 사람들은 이런 것을 우찌 알았을까?)

 

마을 할아버지는 백두대간 <등거리>라 말한다.

<등거리>는 <등>의 전라도 사투리.

 

<등>에 <날>을 세우면,

<등날>, <날등>이 된다.

 

"시방 자네가 백두대간 날등에 서있는 것이여."

 

그러니,

<마루금>은 <날등>인 셈이다.

 

그럼,

그 백두대간 날등은 노치마을의 어디를 지나가나?

 

 

 

백두대간 마루금이

딱히 길을 따라 있는 것만도 아니고,

한 집에서도 윗채, 아랫채 사이를 지나기도 하고,

심지어는 집 한채를 절반으로 자르기도 한다.

 

길이야, 살아가면서 이리저리 편리한대로 바뀌겠지만,

대간의 마루금은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길인가보다.

 

박정동 할아버지는 말한다.

 

"선거를 허믄, 한 마을인디 운봉 가는 사람 주천 가는 사람으로 갈려.

꼭 물맹키로 갈려서 가.

우리 동네에 그런 말이 있어.

<주천> 정지에서 밥해갖고 <운봉> 안방에서 밥묵는다고"

 

ㅎㅎㅎㅎ

마을이 백두대간에 의해 '물가름'만 되는 게 아니고,

'행정구역'까지 나뉘어 선거철이 되면

한 동네 사람이 선거구가 서로 달라 다른 곳으로 투표하러 간다는 말이다.

 

심지어는, 한집도 '백두대간'으로 잘려서

부엌은 <주천면>이고, 안방은 <운봉읍>이 되니,

주천 부엌에서 밥을 지어서, 운봉 안방에서 먹는다는 말인데,

참 재밌고 신기하다.

 

노치마을...

 

멀리서 함 바라보자.

 

지리산에서 내려와

백두산을 향해 가야하는 대간이

잠시 노치마을에 들러 샘터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형상이다.

 

 

 

 

동네 이장님이 말씀하시는 '물가름'이 사실일까?

 

대간 마루금에 서서,

왼쪽으로 떨어지는 물은 낙동강이 되고,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물은 섬진강이 된다는...

 

당근, 사실이다.

 

바로 그게 '산경'이고

'산자분수령(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다)'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은 울나라에서 가장 큰 강중의 하나인

<낙동강>을 가르는 울타리이기도 하다.

 

아래 그림을 보자.

 

 

 

 

강이 '크다'고 할 때,

무엇이 크다는 말일까?

 

강의 하구가 넓으면 큰 강일까?

가장 길면 큰 강일까?

 

나는 '강의 유역'이 가장 넓은 강을

가장 큰 강이라 부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강의 유역'은

그 강을 이루는 모든 빗방울이 떨어지는 지역을 말한다.

 

위의 그림에서

<낙동강><백두대간>-<낙남정맥>-<낙동정맥>

세 울타리 안쪽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모여서 흘러 내리는 강이다.

 

<낙동강 유역>으로 떨어지는 모든 빗방울은

낙동강 하구로 빠져나와 바다로 들어간다.

 

<섬진강>도 마찬가지다.

<섬진강><백두대간>과 <호남정맥>

두 개의 울타리 안쪽으로 떨어지는 모든 빗방울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강이다.

 

노치마을은

백두대간의 날등에 서있기 때문에,

절반은 <섬진강 유역>이 되고

절반은 <낙동강 유역>이 되는 것이다.

 

자, 이제부터

 

박정동 할아버지가 말씀하신대로,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대간꾼들은....

 

마을 당산에 꼭 '절'을 하시고,

노치샘물을 꼭 '자시고' 가시기를 바란다.

 

(기념리본은 절대로 달지 마시기를. '리봉낭구' 될까바 걱정하시는 할아버지 생각도 좀.... ^^;;;)

 

(To Be Continued!!)

 

-mamZ'ang-

 

 

보충학습[1]

박정동 할아버지(노치마을 노인회장, 76) 의 구수한 노치마을 이야기

 

o "백두대간 등거리를 눈으로 뵈줘야제." 
o "대간꾼들이 전부 요 질로 올라댕기는 골목이나 마찬가진디 질이 나뻐. 이것이 백두대간 날인디 말이여"

o "우리 마을은 아무 거시기한 일이 안 생겨. 그것이 왜 그런고 하면..."
o "우리 마을을 지키는 당산이여. 백중날이믄 돼지 잡아서 바치고 제를 지내. 제 지낼라고 맘묵은 사람은 미리부텀 개고기 한 점도 안 묵어. 깨깟하지 못헌 사람은 절대 금지여."
o "땅바닥에다 상 채릴랑게 당산 하나씨헌티 죄송혀서... 왜 하나씨라고 부르냐믄 그것은 지리산이 마고할무니 여신인게 지리산하고 내외간이라는 뜻으로 할아부지여"  
o "우리 애랬을 직에는 어른들 말이 호랭이가 여그 당산 뒤에 와서 마을을 쳐다보고 있다 그랬어. 넘한티 나쁜 짓 허믄 호랭이가 물어간다 그랬어. 참말로 그때는 호랭이가 무서웠제."
o "근디 쩌어그 뒤로 있는 나무 뵈인가? 자네 눈에는 어쩐가. 아 참 쑥시려. 저것이 거시기 영락없이 부인이 남편을 요러고 딱... 아 쑥시려"
o "요 욱으로 수정봉. 거그가 옛날에 부져자들이 치매에다 돌을 날라서 성을 쌓았다고 성재라고 허는 디여. 그 너메로 입망치 지나서 여원치고. (몸을 돌려서) 저어그는 고리봉인디 배를 뭉끈 고리라 해서 고리봉이여. 여그가 옛날에는 전부 갈대밭이였디야. 노치가 갈대 노자를 써서 노치여. 긍게 '갈재'마을이라고 허고 가재마을이라고도 허고 그랴. 그전 옛날에는 여그까지 물이 찼다는 말이 맞는 말인 것이제." 
o "자네가 시방 백두대간 날 위에 딱 섰단 마시."
o "마을 길을 가운디 놔두고 물이 딱 갈려. 비가 오믄 빗물이 갈라져. 이 짝으로는 진주 남강, 요짝으로 긍게 오르손쪽으로는 섬진강으로 물 가는 길이 나놔진다니께. 수분(水分)이다 그 말이여."
o "선거를 허믄 한 마을인디 운봉 가는 사람 주천 가는 사람으로 갈려. 꼭 물맹키로 갈려서 가. 우리 동네에 그런 말이 있어. 주천 정지에서 밥해갖고 운봉 안방에서 밥묵는다고"
o "저어그 하우스 있는 디 삼거리 거그를 봐. 그 자리가 일본놈들이 백두대간 날을 끊은 자리여. 여그를 온전하게 놔두믄 큰사람이 난다 그래서 일본이 망헌다 그리갖고는 혈맥을 끊을라고 구뎅이를 파부렀어. 방죽을 메울라고 본게 거그서 크댐헌 독뎅이가 일곱 개가 나와. 사람 같으믄 여그 목울대를 꽉 막아논 것이제."

o "노치마을 소나무 당산 하나씨한테 절허지 않고 참샘물 마시지 않은 사람은 백두대간 지나갔다 헐 수 없제."
o "시암물을 시방 한번 떠 자셔 봐. 얼음물 같을 것이여. 근디 겨울에는 물이 따땃해서 짐이 퐁퐁 나."
o "고려시대에는 절이 있었다고 그랴. 그런게 이 샘이 스님들이 판 샘이제. 이것이 돌에서 나오는 석수여. 6.25 나고 장티푸스가 심허게 돌던 때도 요 시암물 묵은 사람은 뱅을 앓들 안혔어 그만큼 좋아. "
o "나 여기 지나갔소 허고 지내간 사람마다 붙여두고 가. 뜯어낸게 그라제 냅두믄 리봉낭구가 돼 부릴 것이구만"  
o "밤낮으로 대간꾼들이 들어와싼게 개새끼들이 짖어 싸서 통 잠을 지대로 못자. 아 젊은이들이 때가 없드라니께 한 부대가 와서 이마빡에다 불을 대고 산을 올라가기도 하고 그랴. 모다들 발디딜 구멍만 보고 가드만. 날도 안샜는디 그러고 가믄 안 엎어지고 지대로 올라간다냐 허고 쳐다보고 있제."
o "그 사람들이 갖고 다니는 백두대간종주지도에 보믄 우리 마을이 딱 나와. 내가 손구락으로 지도를 짚은서 여그가 시암이고 여그가 우리집이고 여그가 면장집이고 갈치네. 내가 그 사람들허고 공부를 혀."
o "겨울이믄 무릎까지 눈이 쌓인 길을 넘어와. 땡땡 얼어 갖고 와. 아조 동태맹키로 빳빳해. 사람을 불러 놓고 마루도 못 올라와. 그러믄 우리 할마씨가 신 벗기고 양발 벗기고 불 땐 방에다 사람을 녹히고 동태짝같은 신은 씻거서 부뚜막에다 몰랴갖고 새 신맹키로 맹글어서 내보내. 우리 마누라만 허는 일이 아니여. 누구 집이나 다 똑같제."

(출처: 남인희 기자  namu@jeonlado.com, '백두대간 등거리에 앉았네' @전라도닷컴)

 

 

보충학습[2]

노치마을에서 밝혀진 새로운 사실-

 

 

 

백두대간 지리산 정령치(1172m)를 지나 고리봉(709m)아래 노치마을에서 백두대간 환경 대탐사팀은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일제는 1910년대 이곳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백두대간과 지리산의 맥을 끊은 사실이 밝혀졌다.

 

행정구역상 남원군 주천면 덕치리(회덕마을과 노치마을이 합쳐짐)에 속하는 노치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덕음산은 남으로 고리봉을 연결하며 지리산으로 이어지는데 노치마을을 지나 고리봉으로 올라가는 능선에다 일제는 백두대간과 지리산을 인위적으로 단절시켰다는 것이다. 일제는 이곳에 길이 100m, 폭 20m, 깊이 3~4m의 규모로 능선을 가로지르는 웅덩이를 판 후 이곳에다 돌로 만든 볼트형(여섯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2개 1조로 이를 연결할 경우 거대한 잠금장치가 되어 능선의 맥을 차단 함, 위 사진 참조) 잠금장치를 하여 백두대간과 민족정기를 끊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돌은 2개 1조로 되어 있으며 두 개를 합칠 경우 가로 1,6m×세로 1.6m의 사각형이 되며 가운데는 둥근 원형이 되는 잠금장치이다. 일제가 이러한 방법으로 백두대간과 지리산 사이의 맥을 차단한 것은 이곳의 지형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부터 이곳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덕음산-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이곳은 지리산이 사람으로 비유하면 머리에 해당되고 이곳이 바로 목 부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제는 바로 목 부위에 숨통을 옥죄는 거대한 석물로 제작한 잠금장치를 함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일제가 마을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능선을 가로질러 파헤친 후 그곳에 돌을 채워 넣는 작업을 시켰다고 말하고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석물은 능선의 주요 기가 흐르는 곳을 차단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 사람들은 이를 ‘방죽’이라고도 부르며 ‘울대’라고도 부르는데 그 지점이 바로 사람의 목울대와 비유해 그렇게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일제는 1910년대부터 백두대간은 물론 한반도의 주요지점에 쇠말뚝을 박거나 인위적으로 길을 낸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정기를 차단했으나 이번에 밝혀진 것처럼 대규모로 거대한 석물장치를 이용한 것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러한 흔적은 90년대 중반까지 존재하였으나 90년대 중반이후 이 지역에서 대규모 경지 정리가 이루어지면서 ‘울대’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이곳에서 나온 석물장치 5개만 수거되어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 신수일씨가 정원석으로 보관하고 있는 것을 탐사단의 탐문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출처 : 홀로걷는 백두대간
글쓴이 : 박종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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